수필

[에세이스트 상념] 사람과 숫자 그 불가분의 관계

최고야님 2026. 9. 26. 11:16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삶의 모든 것이 숫자
언어가 사람 흩어놓아도 숫자는 사람 잇는 역할하나

 

숫자가 필수인 세상을 반영한 노트북 숫자패드. 사진=관리자

 

사람은 숫자의 맹신자인가 아니면 숫자의 노예인가.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때까지 숫자에 얽매인다. 아니 그 이후에도 숫자는 사람에게 늘 가까이 있다.
이런 일생을 사람이 만든 것인가, 신이 만든 것인가. 숫자에 대한 의구심은 계속된다.

성경 속 바벨탑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쓰면서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 하자 신은 언어를 뒤섞어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했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지게 했다.

그런데 숫자는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소통하게 했다. 여기서 또 의구심이 생긴다.
언어는 다르게 되면서도 숫자는 왜 공통으로 남았을까. 

일각에서는 처음부터 인류가 같은 숫자 표기법을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내세운다. 모든 민족이 널리 사용하는 숫자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만들어지고 퍼졌다는 것이다.

그렇다해도 역시 궁금증은 남는다. 말은 서로 다른데 숫자는 왜 같아졌을까.

생각해보면 사람은 태어나는 날부터 숫자와 인연을 맺는다.
태어났다는 기록부터 숫자가 시작된다. 이름이 제대로 불리기 전에 몸무게라는 숫자가 먼저 생긴다.
이후 성장하면서 모든 생활이 숫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민등록번호·전화번호·계좌번호·자동차번호 등 헤아리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모든게 숫자다. 혈압·혈당·체중 등 건강에 관한 수치도 숫자로 측정된다. 

지금은 휴대폰이 이른바 '손 안의 컴퓨터'로 불리며 사실상 컴퓨터를 대체한다. 디지털 휴대폰 이전 초기 셀룰러폰에는 숫자 자판이 기본적으로 장착돼 있었다. 휴대용 노트북에도 숫자 키패드가 우측에 배치돼 있다. 

묘비에 적힌 일생. 사진=관리자

 

이처럼 살면서는 더 언급 않아도 온통 '숫자천국'이다. 죽는 순간 아니 죽음 이후에까지 숫자에 사실상 지배당한다. 그래서인지 나이 들수록 숫자에 민감해진다. 나이 역시 숫자임에도 말이다.

그렇게 숫자에 시달리면서도 사람은 다시 숫자에 희망을 갖기도 한다. 월급날짜, 적금날짜, 결혼식 날짜에 등 희망적인 숫자도 많다. 행운을 잡은 사람에게 이른바 '계 팄난 날'이라고 부러워하는 면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좋은 숫자를 꼽으라면 로또번호라고 복권 당첨번호가 아닐까. 시쳇말로 대박 숫자다.

평범한 1부터 45까지의 숫자 가운데 여섯 개일 뿐인데 어느 날 갑자기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평생 숫자에 얽매여 살아온 사람이 숫자에 희망을 걸고 숫자에 인생이 전환되는 셈이다.

일희일비라고 이와 반대로 두려워하는 숫자도 있다. '죽을 사'라고 숫자 4자를 꺼리는 사람이 있고 서양에서는 숫자 13을 불길하게 여기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666이 있다. 동양에서는 별 의미없는 숫자이나 서양에서는 성경에서 유래해 오랫동안 불길한 의미로 받아들여져 온 숫자다. 단순한 숫자가 아닌 '666은 악마의 숫자'라고 불안해 한다. 공포영화나 연극 소재로 쓰인 예도 적잖다.

그런데 묘한 일이 있었다. '사람에게 숫자는 뭘까'란 생각에 숫자에 관한 지금의 글을 써갔다. 핸드폰 메모장 창을 열고 그렇게 생각대로 써가면서 ‘최고의 숫자는 복권 당첨 숫자고 최악의 숫자는 666’이라고 적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창이 닫혀 버렸다. 닫힘이나 다른 부분 누른게 전혀 없는데 정말 갑자기 닫혔다. 그동안 써놓았던 글이 전부 사라진 것이다. 자동저장되게 한 것도 아니라서 당황되고 황당했다.

우연일 것이다. 글을 작성하면서 일부러 창을 닫아 없애버릴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 666을 쓰던 때였을까. 또 다시 의구심이 들지만 이번엔 뭔가 찜찜하다.

이렇게 의미 없는 숫자에 의미를 붙이고 행운을 기대하고 때론 두려워한다. 이 모든 것은 숫자가 아닌 사람이 정한 일이다. 눈 뜨면서부터 눈 감을 때까지 숫자, 숫자, 숫자... 그렇다면 숫자의 노예처럼 된 것도 바로 사람 자신이 만든 것 아닐까.

아무래도 숫자가 인간을 옭아매는 존재로 여기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언어(말)가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들도 손가락 하나를 들면 하나라는 뜻은 통한다. 1에 1을 더하면 2라는 것은 세계 어디서나 어떤 민족이든 다 안다. 교육을 통해서라는 전제가 있지만 숫자는 세계 공통이다.

어려운 숫자를 풀어주는 전자계산기. 출처=픽사베이

 

따져보면 숫자는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 숫자가 수학이 되고 수학이 과학이 되고 경제가 되고 살아가는 편리함을 이루게 된다. 

사람이 만든 컴퓨터는 모든 데이터를 0과 1이라는 2진수(비트)로 처리한다. 그렇듯 현대의 인공지능이라는 AI도 본래 입력하는 글자·소리·이미지를 모두 행렬과 수치 벡터로 변환한 뒤 계산하는 '거대한 숫자들의 연산과 융합체'인 것이다.

그만큼 숫자는 사람과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한다. 미래에는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전망 아닌 전망도 있으나 숫자가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람은 숫자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일게다. 

우스개 말처럼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외쳐도 숫자로 일생을 살아오고 생의 마지막에도 숫자가 남는다. 묘비에 0000.0.0~0000.0.0으로 일생이 숫자가 된다. 생사(生死) 표시가 없어도 앞 숫자가 태어난 일시고 뒤 숫자가 사망한 일시 숫자인 것은 알려주지 않아도 안다. 

그렇게 두 숫자 사이에 한 사람이 웃고 울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살아온 생노병사 세월이 놓여 있게 된다.

그러면 사람은 숫자의 맹신자일까. 숫자의 노예일까. 글을 시작할 때는 그렇게 물었다. 쓰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든다.

숫자에 묶여 사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숫자가 있기에 사는 것이 맞지 않을까. 서로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이 서로 같은 숫자로 인해 같은 시간과 거리와 세상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바벨탑으로 인해 언어가 사람을 흩어놓았다. 숫자는 다시 사람을 이어놓았다. 그것이 사람이 만든 우연인지 사람이 알 수 없는 신의 뜻인지는 여전히 의문부호다.

그래서 숫자는 대할수록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