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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해마다 첫눈이 대설

최고야님 2025. 12. 13. 23:25

예전에는 주머니 속에 늘 다이어리 수첩 하나가 들어 있었다. 종이의 결을 따라 연필이나 볼펜으로 일정을 적고, 월중 행사를 빼곡히 기록하는 일이 하루의 마무리이자 시작이었다. 작은 수첩은 그해의 시간과 마음을 함께 묶어두는 저장고였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일정 사이사이에 남겨진 낙서와 메모가 당시의 공기와 감정을 고스란히 불러냈다.

 

이제는 디지털 시대다. 휴대전화 하나면 일정 관리부터 은행 업무까지 모두 가능하다. 손 안의 작은 기계가 컴퓨터가 되고, 다이어리는 화면 속 캘린더로 옮겨갔다. 편리함은 분명해졌지만, 종이를 넘길 때의 사각거림이나 잉크가 마르며 남기던 흔적은 기억 속으로만 남았다. 대신 우리는 터치 한 번으로 과거를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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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하순이 되면 어김없이 마음이 먼저 겨울을 향한다. 올해는 첫눈이 언제쯤 내릴까. 아직 춥지 않은 바람 속에서도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첫눈은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자, 마음 한켠을 가볍게 두드리는 작은 설렘이다. 아이처럼 기다리지는 않더라도, 첫눈이라는 말에는 언제나 특별한 온도가 있다.

 

휴대전화 일정표를 열어 지난해 기록을 찾아본다. 11월 27일, 첫눈. 그리고 옆에 적힌 메모, 대설주의보. 화면 속 글자는 담담하지만 그날의 풍경은 또렷하다. 조심스럽게 내리다 이내 세상을 덮어버리던 눈, 갑작스레 달라진 거리의 색깔,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던 저녁.

 

올해의 첫눈은 12월 4일에 왔다.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기다림만큼 반가웠다. 그런데 이번에도 대설이다. 첫눈의 설렘보다 먼저 걱정이 앞서는 현실적인 단어가 나란히 붙어 있다. 그래도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경계심을 잠시 내려놓게 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얀 조각들이 소음을 덮고, 시간을 잠시 느리게 만든다.

 

내년에는 언제쯤 첫눈이 내릴까

 

첫눈은 늘 처음처럼 다가온다. 해마다 보고, 기록하고, 기억해도 그 순간의 느낌은 새롭다. 다이어리 수첩이든 휴대전화 일정표든, 어디에 적히든 상관없이 첫눈은 기록을 넘어 마음에 남는다.

 

디지털 화면을 닫고 창가에 서서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그 짧은 시간, 다시 계절과 마주한다. 첫눈은 그렇게 한 해의 끝자락에서 평화로움으로 새해에 대한 기대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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