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내린 벤치와 금빛 갈대 사이로 걷는 회색 개천길
겨울하늘 가르는 새떼 보니 오래된 팝송 절로 귓가에
겨울 풍경에 매료돼 시인 아닌 시인처럼 싯구 떠올라

일터가 고양시 창릉천 인근에 있습니다. 새벽녘부터 일을 하는데 시간이 지나자 아침 햇살이 내려옵니다.
휴식시간을 이용해 잠시 ‘창릉천 푸른숲길’을 걸었습니다.
작년 12월의 일입니다. 초겨울이라 밤새 기온이 내려갔는지 벤치에는 하얀 서리가 앉았습니다.
바짝 마른 길가 풀잎도 희끗희끗 해졌습니다.
낮게 떠오른 해가 갈대를 비추자 누렇게 말랐던 갈대가 금빛으로 변했습니다. 나무다리 난간에는 긴 그림자가 생기고 얼어붙은 물 위에도 아침 햇살이 비쳤습니다.
황량한 천변의 모습에 쓸쓸함은 느끼면서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마침 철새 무리가 줄지어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오래전에 즐겨 듣던 팝송 한 곡이 떠올랐습니다.
‘El Condor Pasa’
우리에게는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제목으로 익숙한 노래입니다.
그 노래가 실제로 들린 것은 아니었는데 마치 들리는 것처럼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흥얼거리며 걷다가 우두커니 서서 철새들을 바라보고 잠시 상념에 빠지고…
새들이 멀리 사라진 뒤에야 다시 걸으며 주변을 봤습니다.

창릉천 물길을 따라 은빛 갈대가 이어지고 그 사이로 난 작은 목교( 木橋·나무로 놓은 다리) 위를 걸었습니다. 다리 위에 길게 누운 그림자가 긴 여운을 남기는 겨울 아침 풍경이 됐습니다.
조금 더 걸으니 겨울 들판 너머 산이 보이고 잎을 모두 떨군 나무들이 밤새 추위에 떨다가 아침 햇살에 기지개를 펴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직전의 계절처럼 화려한 꽃도 단풍도 없는 쓸쓸하고 스산한 모습이지만 그래서 겨울 풍경을 좋아하는지도 모릅니다.
서리 내린 벤치, 마른 갈대, 얼은 개천, 목교 위 긴 그림자 그리고 방금 사라진 철새들.
여기에 들리는 듯한 팝송까지 겨울 풍경 느낌으로 오랜 여운을 남겼습니다.
특별한 기대로 나선 발길은 아니었지만 창릉천을 따라 걷다가 마주친 풍경들입니다.
잠시 지나친 여러 소재들이 단상을 넘어 싯구로 이어집니다.


차가운 겨울 추위에 떨던 갈대 사이
오랜 목교 발걸음 재촉하네
다리 위로 비친 긴 그림자
사람 없고 서리만 앉은 빈 벤치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 더하네
하늘에 철새는 날아가고
사람은 터덜터덜 길을 걷네
그렇게 겨울은 가네
창릉천 겨울 풍경에 매료돼 떠오른 싯구가 시인 아닌 시인처럼 이어집니다.
그날 새벽 걸었던 ‘창릉천 푸른숲길’ 의 겨울 아침은 ‘창릉천 하얀숲길’이 돼서 그렇게 오래된 노래와 시가 있는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세월은 가도 그곳, 그 기억은 철새처럼 날아가지 않고 머리 속에 계속 남겠지요.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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