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의 숨결이 서려 있는 현장을 직접 발로 누비며 기록하는 일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경험입니다.
늦가을의 그윽한 햇살이 비치는 강화도 정족산 자락을 찾아 강화 삼랑성(정족산성) 남문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단군 시대의 전설부터 고려·조선 시대의 외세 침략 잔혹사까지 묵묵히 버텨낸 단단한 돌성벽 앞에서 마주한 바람은 수천 년의 세월을 품고 있는 듯했습니다.
고려와 조선의 외곽을 지킨 궤적… 역사의 궤적 이어져
강화 삼랑성은 정족산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단군이 세 아들인 부소·부우·부희에게 성을 쌓게 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전해옵니다.
성 안에는 삼국 시대에 창건된 천년고찰 전등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고려 시대에는 개경의 외곽을 방어하고 임시 궁궐인 가궐이 조성되기도 했습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정족산 사고와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이 들어서며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신성한 장소로 분류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바라본 성벽은 견고하면서도 주변 숲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단군 시대의 아득한 고대사부터 고려·조선 시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궤적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병인양요의 격전지, 양헌수 장군과 160명 영웅들
삼랑성 남문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승전의 기록을 간직한 거점입니다. 고종 3년인 1866년,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반발하여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병인양요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조선 군대는 프랑스군에 맞서 목숨을 걸고 전투를 벌였습니다.
양헌수 장군은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해 오던 160여 명의 프랑스군을 정족산성으로 유인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물리쳤습니다. 사진 속 남문 아치형 무지개문(홍예문)과 단단한 석축을 바라보고 있으면, 당시 수세에 몰린 국운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성벽에 매달려 싸웠던 조선 군사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남문 성루 위로 비치는 따스한 가을 햇살과 대비되는 성벽의 차가운 돌질감은, 백척간두의 위기 속에서 승전을 끌어낸 양헌수 장군과 호국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을 다시금 되새기게 만듭니다.
유구한 역사의 숨결을 고이 간직한 천년의 유산
오늘날 강화 삼랑성은 사적 제130호로 지정되어 소중하게 보존되고 있습니다. 개경과 한양의 외곽을 방어하던 요새로서의 기능은 내려놓았지만,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채 찾아오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남문의 홍예문을 지나 전등사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붉게 물든 단풍과 고즈넉한 성벽이 어우러져 한 편의 서사시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강화도를 방문하신다면 꼭 삼랑성 남문 입구에 서서 수천 년 동안 이 땅을 지켜온 성벽의 단단함을 직접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오늘 기록한 현장의 생생한 기운과 역사적 의미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 따뜻한 영감으로 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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