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능력인 시대… 빠르지 않는다고 뒤처지는건 아닐 것
인생 후반부에는 속도보다 방향을 다시 바라볼 필요도 있어

세상이 너무 빨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사이 쌓인 뉴스부터 살핀다. 휴대전화에는 읽지 않은 메시지가 기다리고 있고, 인터넷에서는 몇 시간 전에 나온 정보조차 벌써 낡은 것이 된다. 음식은 주문하면 곧 도착하고 물건은 오늘 주문해 내일 받는 것이 당연해졌다. 인공지능에게 글을 부탁하면 몇 초 만에 문장이 쏟아진다. 예전에는 며칠 걸리던 일도 이제는 몇 시간, 때로는 몇 분이면 끝난다.
편리한 세상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시간을 그렇게 많이 절약했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빨리 끝냈으니 여유가 생겨야 하는데 그 빈자리에 또 다른 일이 들어온다. 시간을 아낀 만큼 삶이 느긋해진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세상이 된 셈이다.
빠르게 적응해야 살아남는 시대
언제부터인가 ‘빠르다’는 말은 거의 칭찬이 됐다. 업무가 빠른 사람은 유능하다고 평가받고, 판단이 빠른 사람은 결단력이 있다고 한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야 살아남는다는 말도 귀에 익숙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이 변하는데 과거의 방식만 고집할 수는 없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필요한 정보에 빠르게 접근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문제는 속도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될 때다. 남보다 늦으면 불안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다. 여행을 가서도 사진을 찍고 올리느라 정작 눈앞의 풍경을 천천히 바라볼 시간이 없다.
걷는 사람보다 자동차가 빠르고 자동차보다 비행기가 빠르다. 그렇다고 비행기에서 본 세상은 언제나 걷다가 만난 풍경보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걸어야만 보이는 것이 있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도 그렇고, 어제까지 초록이던 나뭇잎 끝에 번지기 시작한 가을빛도 그렇다. 목적지만 보며 달릴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속도를 낮추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빨리 가는 것보다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
젊을 때는 앞만 보고 달려도 됐다. 해야 할 일이 많았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다. 직장에서는 경쟁해야 했고 가족을 책임져야 했다.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보다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는 것이 중요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인생에는 속도를 바꿔야 할 때도 온다. 무조건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하는 시간이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길에서 무엇을 보고 누구와 걸을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남보다 한 발 앞서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는 것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느리게 산다는 것이 세상과 담을 쌓고 변화에서 물러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받아들이되 삶의 속도까지 세상에 맡기지 않는 것이다. 인공지능도 배우고 새로운 기술도 사용하면서 오후에는 공원을 걸으며 나무 한 그루를 오래 바라볼 수 있다. 둘은 모순되지 않는다. 기술은 빨라져도 사람까지 기계의 속도로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때로는 멈추는 것도 ‘빠르게’ 가는 일
우리는 흔히 멈추면 뒤처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길을 잘못 들었을 때 가장 위험한 것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빨리 달리는 것이다. 잠시 서서 방향을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돌아가는 것이 결국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길일 수 있다.
인생도 그렇다. 쉬는 날 하루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밥을 먹고 목적지 없이 동네를 걸어도 된다. 오래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전화 한 통을 걸어도 좋다. 그 시간이 생산성으로 계산되지 않는다고 해서 쓸모없는 시간은 아니다.
세상은 앞으로 더 빨라질 것이다. 오늘 놀라운 기술도 몇 년 뒤에는 평범해지고 우리가 지금 상상하지 못하는 변화가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는 능력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속도를 낮추고 자신이 어디쯤 와 있는지 바라보는 능력도 필요하다. 빨리 가는 것은 기술이다. 하지만 언제 천천히 걸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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