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봄비와 가을비의 상반성과 여름비와 겨울비가 아닌 까닭에 대해

최고야님 2026. 10. 13. 09:39

언제부터인지 아침에 비가 오는 모습. 사진=newsnlog

 

이른 아침에 비가 내립니다. 사실 모두 잠든 새벽부터 오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비에 각각 저마다의 다른 이름과 감성을 담아 불렀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비'가 있고, 찬 바람과 함께 쓸쓸한 감성을 전해주는 '가을비'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문득 비에 관한 이름들을 가만히 톺아보다가 한 가지 흥미롭고 아련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봄비와 가을비처럼 계절의 이름을 정답게 붙여 부르는 이름이 있는 정작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에는 '여름비'라는 표현 대신 '장마'나 '호우'를 쓰고, 겨울에는 '겨울비' 대신에 '눈'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습니다.

그 단순한 이름의 차이 속에는 어쩌면 우리가 지나온 삶의 녹록함과 자연을 보는 지혜와 관습이 녹아있는지도 모릅니다.

언제부터인지 아침에 비가 오는 모습. 사진=newsnlog

비가 여름에 장마로, 겨울에 눈으로 불리는 까닭

돌아보면 여름철 내리는 비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불리기보다는 늘 '장마'나 '호우' 심할 경우 '폭우' 라는 무거운 단어로 쓰이기도 합니다. 여름 뜨거운 볕에 메마른 땅을 적시는 고마운 물줄기이지만, 쏟아붓듯 내리는 호우는 피해를 걱정하는 우려를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퍼붓는 장대비 속에서 피해를 막으려 애쓰던 기억이 '여름비'라는 정감스런 이름이 설 자리를 밀어내 버린 셈입니다.

마찬가지로 추운 계절에는 비 대신 '눈'이라는 이름이 대신합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추운날에는 비가 아닌 포근한 눈송이가 돼서 세상을 하얗게 덮는 것이 자연스럽고 익숙한 풍경입니다. 그래서 겨울이면 비 보다 눈을 보게 되고, 겨울비라는 말보다는 눈이라는 이름이 훨씬 더 친숙한 느낌입니다.

여름비 대신 장마로 부르고, 겨울비 대신 눈을 생각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 속에서 생존하고 적응해 온 인간의 정서가 만들어낸 언어의 모습인 듯 합니다.

겨울비 아닌 눈이 내린모습. 사진=newsnlog

찬 공기 속에 내리는 차가운 겨울비 아닌 눈의 감성

그렇기에 모두가 눈을 생각하는 계절에 조용히 내리는 '겨울비'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차가운 공기를 뚫고 눈 대신 투명한 빗방울로 떨어지는 겨울비는 또 다른 고요와 깊은 사고의 시간을 주곤 합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맺혔다 떨어지는 겨울빗방울을 보면 지나온 한 해의 수많은 애환이 스쳐 지나갑니다. 봄비처럼 따스하지도 않고 가을비처럼 낭만적이지도 않지만, 겨울비는 비워진 세상을  채우며 또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의미를 건넵니다.

익숙한 눈 대신 가끔 찾아오는 겨울비는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생각의 시간을 줍니다.

계절의 비와 눈이 안겨주는 삶의 온도와 위로

봄비의 따스함과 가을비의 쓸쓸함, 여름을 채우던 장마의 치열함 그리고 겨울을 하얗게 덮어주는 눈과 어쩌다 찾아오는 겨울비까지. 비의 형태로 사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듯-내리는 비는 같지만 우리가 다른 이름으로 의미를 부여하듯-우리의 삶 또한 계절의 변화를 맞으며 비로소 깊어지고 단단해지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비록 여름비라는 정감스러운 이름은 장마에 밀리고, 겨울비라는 차가운 느낌의 이름은 포근한  눈에 그 자리를 내어주었을지언정, 하늘에서 내리는 모든 비는 이 땅의 생명을 살리는 고마운 근원임은 틀림 없습니다.

조용히 내리는 이슬비, 오는 듯 안 오는듯 내리는 가랑비, 거센 장대비 등 계절에 따른 이름 외에 내리는 형태에 따라 불리는 이름도 각각이나 모두 생명력을 전해주는 것은 같습니다.
오늘 비는 소리가 크지 않은 것을 보니 가랑비 같습니다. 빗줄기는 굵지 않아도 내리는 양은 적지 않습니다. 비는 맞기 보다 바라보는게 더 정감스럽다고 합니다. 이른 아침에 작은 빗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