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어딜 가나 기다림이 필수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인구가 밀집된 도심에서는 식당을 가더라도, 병원이나 공공기관을 찾더라도 길게 늘어선 줄과 마주하는 것이 어느덧 당연한 일상이 됐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과거에 비해 시민 의식이 신장되면서 새치기나 무질서로 인한 혼잡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저마다 순번표를 손에 쥐고 자신의 순서를 조용히 기다리는 모습 속에서 성숙한 사회적 약속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지만 무작정 흘러가는 시간을 견뎌내는 일은 여전히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곤 합니다. 오늘 오전에 꼭 처리해야 할 금융 용무가 있어 은행을 찾았다가 마주한 대기표 숫자가 가슴을 턱 막히게 만들었습니다.
대기 인원 18명이 안겨준 기다림의 지루함과 시간의 무게
창구 입구에서 뽑은 대기표에는 '대기 인원 18명'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습니다. 대략 1인당 업무 처리 시간을 3분 정도로 계산해도 최소 54분, 즉 한 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더구나 앞사람의 업무가 단순 수납이 아닌 상담이라면 소요 시간은 더 늘어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도 대기 숫자는 더디게 바뀌고, 사람들은 기다림에 지친 기색을 보였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그냥 돌아나가는 사람들도 눈에 띕니다. 그런데 내가 오늘 처리해야 할 일은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요즘은 웬만한 금융 업무를 모바일 앱이나 온라인으로 간편히 해결할 수 있다지만, 본인이 직접 방문해 신분증을 제시하고 대면으로 처리해야 하는 용무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지루하고 갑갑해도 오롯이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디지털 문명의 이기와 글쓰기가 선사한 뜻밖의 몰입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이 '손안의 작은 컴퓨터'로 불리는 스마트폰 시대인 점입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면 그저 막연히 지루함을 견뎌야 했을 것입니다. 스마트폰 덕에 폰을 통해 뉴스나 소식을 접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다행스런 점입니다.
더구나 평소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내겐 기다림의 순간이 되레 창작의 시간으로 다가왔습니다. 휴대폰 메모장을 열고 지금 이 순간 스쳐 지나가는 생각과 객장의 풍경 그리고 기다림에 대한 솔직한 느낌들을 문장으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문명의 이기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옛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화면 위로 엄지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글쓰기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지루함은 사라지고 나만의 생각에 빠져드는 몰입의 즐거움이 됐습니다.
순서를 기다리며 마주한 일상 속 소소한 깨달음
한참 글을 쓰다 보니 어느덧 띵동 소리와 함께 대기 숫자가 내 번호에 가까워졌습니다. 글쓰기에 열중한 덕에 한 시간 가까운 긴 기다림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글쓰기에 몰입하다가 자칫 호출 순서를 놓치게 될까봐 일단 글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기시간도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기다림이라면 그 시간을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체감하는 시간이 달라지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지루함에 자칫하면 짜증으로 채워질 수 있던 한 시간이 이렇게 한 편의 글이자 기록으로 남게 된 것은 생각지 않은 소득입니다.
이제 곧 내 번호가 호출될 차례입니다. 길었던 기다림이나 글을 쓰면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창구 직원을 마주하면 밝게 인사를 건내고 오늘 용무를 기분 좋게 잘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역시 사람 일은 생각하기 나름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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